나의 이야기

우리엄마

edina 2008. 3. 11. 16:03
 

우리엄마에게 나는 특별한 자식이었나 봅니다.

자라면서 다른 형제들은 엄마에게 떼쓰고 대들고 해도 끄떡없이 받아주시던 엄마가

내게는 유독 그러질 못하셨습니다.  중학교 땐가 무슨일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처음 엄마에게 소리지르고 대들었는데 그 순간 엄마가 정신을 놓으시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놀랬던지.. 아마 이런 일은 성장하면서 두 세 번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어찌될까봐 참으면서 철이 일찍 들었던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자 엄마께서 던지던 한 마 디

‘사주를 보니 셋째 딸하고 살게 될 거 란다.’

그때만 해도 절에 다니시던 엄마가 구정이 지나 한 해 사주를 보고 오신 모양입니다.

어릴 때 인데도 그 말이 어찌나 가슴에 박히던지..  그랬을까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키워주시러 오셔서 내내 우리집에서 살게 되었지요.


요양원에서 3년 남짓.  짜증도 많이 내고 힘들다고 어서 돌아가시라고도 했지만

난 엄마란 영영 그냥 살아계시는 줄 알았답니다.  식사도 못하시고 정신도 가끔 놓으시다가도 또 회복하시기를 반복하니 이번에도 또 괜찮아질거란 믿음이, 아니 모르겠습니다.  그냥 엄마는 늘 살아계셔야 하는 것.  어떤 모습이어도 그저 내 삶 한귀퉁이에서 계셔야 한다는 것.

  돌아가셨다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주무시는 것 같았답니다. 옷을 갈아입히는데 누워계실 때 그렇게 펴 드리려고 아무리 운동을 시켜도 굽어만 있던 다리를 쭉 펴시고 계시니 더 편안해 보였습니다.

  연화장 ‘추모의 집’에 모시고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정말 병원도 아니고 이제 저기 계시는거구나..  살아서 오그렸던 다리 비로서 쭉 펴신 것 처럼 89해 또아리 틀었던 가슴속 응어리들도 굽이굽이 풀어 버리시라. 엄마...


  어른들이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란 말이 너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네요.  스물 다섯 해 나를 키워 주신만큼 나도 당신을 모셨으니 되었다고 마음속으로 앙앙대기도 했으니..

누우면 끊이지 않는 지난 세월이 잠을 설치게 합니다.  한도 없이 꼬리를 무는 걸 보면 엄마와 산 세월이 그만큼 길었다는 것,  그리고 나도 그만큼 많이 살았다는 것이겠지요.

恨이 많아 한껏 울었답니다.  그 울음속으로 엄마에게 빌용서를 묻어보냅니다.


  사순절에 돌아가시면 천국문이 활짝 열려있다네요.  그 말에 위안을 삼습니다.

이제 ‘엄마’를 부를 일이 없다는 것.  영영 가슴속에 담아야 하는 그 단어.  때문에 더욱 서럽답니다.

  내 슬픔에 함께 해주신 분들께

큰 위로가 되었음을 전하며 다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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