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운산

edina 2010. 10. 4. 21:42

산행을 갔다.  안성 서운산.

비소식이 있어서 인지 사람들이 안왔다.  네 부부 8명

길은 가파르지 않고 비교적 순탄한 흙 길이다.

 

'탕흉대' 서봉(543m) 아래 서쪽 끝에 돈대처럼 생긴 바위턱이다. 안성 평야가 확 드러나는

천연전망대이다. 

 

바위에 글은 거의 지워져 희미하다.

 

산 정상 서운 산성 표지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소나무 숲 길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내려가는 길..

 

내려와 '시토안'이라는 포도박물관을 들렀다.

건물은 멋진데

 내부는 한참 모자란다.

포도가 처음 들어오게된 것을 설명하는 모형들..

신부님들이 영성체할 때 필요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들여오게 되었단다.

 

 

 

 건물 앞에 가로등의 모습, 포도 모양이다.

 점심은  유명한 '장터 국밥' 집에서 먹기로 했다.

가마솥에 국밥을 끓이는데 주말에는 하루 1600여명이 오기도 한단다.

 옛날처럼  장작을 떄지는 못하고 가스를 이용해서 끓이고 있었다.

 역시 맛있다. 빈대떡도 .. 주인장 말에 의하면 자기 죽을 때까지 이 국밥 5,000원을

올리지 않을거란다.

 설설 끓고 있는 국

 포도밭을 들러 포도를 사왔다.

작년에도 왔었는데 정말 맛있는 포도를 따는 곳이었는데 올해는 단 맛이 많이 떨어진다.

역시 긴 비를 여기도 비켜가진 못했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안성시 아양동 주공아파트 뒷 편에 자리잡고 있는 아양동 보살입상을 찾아 나섰다.

아파트 사이에 숨어있어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았다


여미륵인 보살입상이랑 남미륵인 석불입상 두 기가 서있었다.

고려시대 때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보살입상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보관을 쓴 긴 머리,자갈로 눈동자를 만들어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오똑한 코, 두툼한 입.. 한 눈에 반할 만큼 미인의 모습이었다.  오른손은 가슴에 얹었고,

밑으로 내린 왼손과 허리 부분의 하부 이하는 매몰 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이곳 마을사람들로부터 미륵불로 알려진 이 보살입상은

옛날에 젊은 장수가 도기리의 탑산에서 뛰어올라 알미산을 딛고 비봉산 장수바위로 뛰다가

그만 실수로 미륵의 목을 차서 부러뜨렸는데, 그 후 젊은 장수는 전쟁에서 전사하였고,

미륵은 마을사람들에게 복구되었다고 한다.

멋스러운 보살입상에 비해 석불입상은 별 기교없이 서툰듯한 소박한 모습이다.

보살입상보다 키도 작고 얼굴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다. 관모를 쓰고 법의를 양팔에

 걸치고 있었다. 석불 역시 무릎 부위 하단부는 매몰되어 있었다.

 지난밤 잠을 잘 못자고 (생일이라 식구들 밥해먹이느라)

보낸 하루여서인지 오늘 몸이 고되다, 아침에 여정공부 하러 가서 대따 졸고 ㅋㅋ

집에와서는 돌침대 불 켜놓고 라흐마니노프 들으며 푹 잤다.

 

이미 시작된 가을을 이렇게 만나고 왔지...